탐사보도에 목말랐던 서른 살 기자 불길 속에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취재수첩을 남겨두고고 김애린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 24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300일편집자주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사회부는 전원 출근해주세요 인명피해 확인 빠르게 부탁드려요

저도 출발합니다 지난해 12월 휴일의 아침 사회부장 지시를 신호탄으로 KBS 광주방송총국 보도국 단체 대화창이 쉴 새 없이 깜박였습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속보가 뜬 직후 마침 당번이던 손민주 기자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붙잡았습니다 힐스테이트 유성

소방당국에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방콕발 제주항공 착륙 중 화재 발생 두 명은 구조 불은 아직 간단한 내용은 더없이 무거웠습니다

손 기자는 잠시 숨을 멎었습니다 그리고 물어야 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요 현장으로 달려가며 1보를 썼다

갈대밭 너머로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연기 사이로 얼핏 보이는 비행기체는 꼬리만 남아 있었습니다 불안이 스쳤습니다

며칠 전 선배가 떠난 휴가지는 하필 방콕이었습니다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선배 오늘 오는 날 아니죠 그때 중계 불이 켜졌습니다 현장 상황을 전해야 했습니다 네 저는 지금 항공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나와 있습니다

선배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단체 대화창에 한 줄 공지가 떴다 탑승자 명단에 김애린이 있습니다 대화창 안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손 기자는 다음 중계를 이어갔습니다

강한 충격 탓에 꼬리 쪽을 제외하곤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계 불이 꺼질 때마다 한숨이 왈칵 터졌습니다 원래 가려던 곳은 호주였는데 방콕으로 휴가지를 바꿨다면서 부자가 된 기분 이라고 웃고 있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그날 종일 7번의 생방송이 돌았습니다 밤 11시가 돼서야 울음이 쏟아졌습니다 사무실 책상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너를 보내면 안 됐는데 다른 선배들 목소리가 숙인 고개 위로 번져 나갔습니다 맞은편 책상엔 선배의 취재수첩이 놓여 있었습니다

붕어빵 노점상의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날 전원 출근 메시지를 끝내 읽지 못한 유일한 기자 김애린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졌습니다 향년 30세

아파본 이들의 이름 애린김경학 임정임 작가는 공항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열댓 명 가족이 사색이 된 얼굴로 부부를 맞았습니다 구급차가 쉼 없이 요란스레 들어갔지만 나오는 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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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상 소감에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5 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내다 매년 5월 보도를 내놓는 게 면목이 없습니다 이국언 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그를 앉는 자세부터 다른 기자 로 기억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 미쓰비시를 상대로 불법 강제노동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가던 시기 취재를 위해 몰려온 기자들은 태도부터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르신을 소개하면 애린 기자는 먼저 찾아뵙고 손잡고 여쭙고 예의부터 다르구나 이 이사장은 얼마 전 후원회원 명단에서 김 기자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목사도 김 기자를 잊지 못합니다

세월호 10주기를 앞둔 2024년 4월 순천교도소 면회실이었습니다 세월호 유족을 제외하고 선장과 선원 등 참사 책임자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했던 유일한 사람 장 목사는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면회를 마치고 그의 옥중 참회를 전했습니다

취재를 마친 김 기자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긴 시간 감사했습니다 광주에서도 연대의 현장에서 자주 뵈어요 김 기자는 늘 탐사보도를 꿈꿨다 하지만 역할과 상황은 늘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 망했어 그 아저씨 거짓말이었어 그런데 이분도 사정이 너무 딱해

그래도 보도는 할 수가 없고 아 보고 다 해놨는데 정말 망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흔들리는 날이면 부친과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빠 저 아무래도 로스쿨 가야겠어요 가슴에 별이 박히는 기분 진심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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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효능감은 바닥을 쳤고 열정은 고갈돼 갔습니다 돌파구를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퇴사 는 진짜 제 마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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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은데 꿈에도 안 오던 딸이 임 작가 꿈에 비로소 보였습니다 딸은 사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애린아 왜 검은 옷을 입었어 웃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기도하고 있으니까 너는 그냥 행복하게 잘 있으면 돼

모친은 트라우마 상담을 받았지만 여전히 새벽이면 가슴을 칩니다 24일로 12 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꼭 300일이 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아직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 4월 12 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진상규명 대책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유가족 협의회 요구사항은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의 국무총리실 이관 독립 조사기구 구성 유가족의 조사 검증 참여 보장 등입니다 셀프 조사 논란 속 조사위는 조종사의 과실 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부친은 매일 아침 딸을 추모하고 향을 태운다 딸이 취재 현장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실 규명이 이젠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습니다 애린아 아빠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될까

오늘은 이야기 좀 해주렴 목차별로 읽어보세요① 비로소 부고 교수 장관 회장의 별세만 특별할까 미처 몰랐던 보통 삶의 비범한 희망 생면부지 남을 구하려 목숨을 던졌다 다시 돌아와도 또 도울 사람 작곡가를 꿈꾼 택배기사 어느 나라에서도 안 하는 노동 을 했다 가출 그리고 탈출 꽃 피는 봄 약속대로 아빠가 돌아왔다 모든 게 무너진 후 소소는 열무와 알타리 를 그렸다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어 놀란 신부님은 아이들의 대장 이 됐다 ② 비로소 부고 Ⅱ 동심으로 생명을 노래하던 시인 제자들 배웅을 받으며 별이 되다 무덤 파던 그 여자 편견과 사납게 싸우고 우아하게 눈을 감다 성매매 여성 쉼터 지킨 푸른 눈의 수녀 외롭던 골목에 삶의 빛 안기다 탐사보도에 목말랐던 서른 살 기자 불길 속에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